대문 앞 이윤학 잠든 아이를 업고 나온 할머니 대문 앞을 서성이고 대추 꽃이 허옇게 핀 대문 앞은 울렁인다 뒤로 돌려 손가락 깍지 낀 할머니 팔 그네 위에 앉아 잠이 든 아이 대문 앞까지 찾아와 환하게 바닥에 깔린 햇볕위에서 할머니 느린 스텝을 밟는다 길쭉하게 늘어난 그림자 콘크리트 바닥 전봇대 담벼락에 끌리고 꺾이고 부딪히며 할머니를 따라 돌아간다 지식은 머리로 기억하지만 정은 마음이 기억합니다 제 피부는 할머니 등에 업혔을 때의 온기를 일찌감치 잊었지만 그때 제 마음을 데운 할머니의 사랑은 손주를 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할머니는 제 마음에 마르지 않는 샘을 파셨습니다 훗날 손주를 보게 되면, 그 샘에서 정을 길어 듬뿍 나눠줄 생각입니다 -김태훈 저, ‘금요일에 읽는 가족의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