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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연가戀歌
등록날짜 [ 2024년02월01일 11시21분 ] | 최종수정 [ 2024년02월01일 11시28분 ]

작은 연가戀歌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 J. 누군가가 당신의 안부를 전해주었을 때 우리가 함께 사랑한 박정만(1946~1988) 시인의 ‘작은 연가’를 외우던 춥고 가난한 시간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가난했기에 더 가난한 우리가 사랑한 시인. 눈물 많았기에 더욱 눈물 많은 우리가 사랑한 시인. 이젠 그가 세상에 없듯 우리에겐 우리를 밝히던 꽃초롱이 꺼져버렸다. 
 
J. 꽃초롱으로 환하게 밝히던 사랑 있었다. 꽃초롱 하나를 밝혀놓았는데도 천 리 밖에서 눈이 부시던 사랑 있었다. 사랑으로 사랑을 밝히고 저무는 강가에 닿던 사랑 있었다. 
 
내가 베드로처럼 당신을 부정할 수 있어도 그 사랑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마저 부정한다면 우리를 존재하게 한 스무 살,시를 사랑한, 시처럼 사랑한 시간을 내 삶에서 빡빡 지워버리는 일이다. 
 
그때 우리는 그 시인을 함께 사랑했다. 한 번도 그를 만난 적 없었지만 한 번도 그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의 동행이었다. 그가 웃으면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가 울면 우리는 함께 울었다. 그가 취하면 우리는 함께 취했다. 
 
시가 밥이고 술이었고 연애였던 시간이었다. 배가 고플 땐 그의 시는 우리의 밥이 되었다. 쓸쓸할 땐 그의 시는 우리의 술이 되었다. 외로울 땐 그의 시는 우리의 연애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배불렀고 늘 취해있었고 늘 사랑했다. 
 
손에도 주머니에도 지갑에도 시가 두둑해서 우리는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그의 시가 있어 행복했다. 시와 함께 잠들고 시와 함께 꿈꾸던 열애의 시간이었다. 
 
J. 아직 기억하고 있는가? ‘서쪽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별’을 보던 저녁과 ‘별을 하나 얻어서/꽃초롱 불 밝히’던 밤을. 우리가 ‘사랑이여!’라고호명하던 그 사랑은 강물처럼 흘러갔지만 우리가 불 밝힌 별은 오늘도 그 하늘 그 자리에 떠오른다. 
 
나는 그 별 아래서 기다렸다. ‘바람도 풀도 땅에 눕’던 어둠 속에 별을 꽃초롱처럼 밝히고 시를 기다리듯 오랫동안 기다렸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라던 가난한 시인의 꿈처럼 나도 별에 작은 셋방을 얻고 싶었다. 우리가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 그 방이 전부인 우리의 별. 
 
엎드려 연필로 종이에 시를 쓰고 그 시들을 별에 가득 붙여 두고 싶었다. 내가 쓴 시는 당신이 제일 먼저 읽어주고 당신이 쓴 시는 내가 제일 먼저 읽고 싶었다. 
 
J. 그 별에 우리보다 먼저 어린왕자가 살았고 우리보다 먼저 그가 돌아갔다. 그는 떠나면서도 걱정스러웠나 보다. 밤이 오면 초롱을 누가 꺼야할지그는 걱정스러웠나 보다. 초롱이 꺼진 다음 찾아올 어둠이 걱정스러웠나 보다. 하늘에서 길을 잃고 물 위로 흘러갈 별이 걱정스러웠나 보다. 
 
그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 지 스무 해가 지났다. 당신이 당신의 별로 돌아간 지는 그보다는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 J, 당신의 안부에도 나는 침묵하기로 한다. 
 
이제 꺼진 꽃초롱에 불을 밝히는 일은 당신의 일이다. 우리의 별에 불을 켜는 일도 당신의 일이다. 꿈꾸는 일도 기다리는 일도 모두 당신의 몫이다. 당신과 나 사이에 마지막 비상구는 그의 시뿐이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하는 사랑이 이 시대에는 있는가? 그런 사랑이 있다면, 그런 사랑의 노래가 있다면 그것이 어찌 ‘작은 연가’이겠는가? 

 

 


 

<정의로운 한국뉴스>
<저 작 권 자(c) 인터넷 한국뉴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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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만 기자, 메일: 48062910@hanmail.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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